취업문제


  글쓴 날 : 2001. 09. 05

  글쓴 이 :  이수희 (leesoohee@hanmail.net)

              서울대 법대 졸, 법학박사과정 수료(관리자주 : 2001년 기고 당시)

 

          

 

 저는 B형간염바이러스 건강보균자의 취업차별철폐운동을 펼치는 의사이신 한상율 선생님과 여러 분들의 의견에 공감하는 한 법학을 전공한 직장인입니다. 근래 대법원 판례들에 나타난 내용 중 한상율 선생님이 의문을 제기하신 부분에 대하여 부족하나마 제 아는 범위 내에서 답변을 드려 보고자 이 글을 씁니다.


 한상율 선생님은 ‘인과관계’에 관한 법원판결의 태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셨습니다.

 의료과오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들에서 피해자(원고)측의 과실입증책임을 경감시키고 의사나 의료기관(피고)측에서 무과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피해자(원고)에게 승소판결을 내리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셨지요.

 또한 산업재해관련 판결에서도 ‘의학적, 과학적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더라고 상식적으로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으면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한 데 대하여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선, 이에 관하여 제가 약간이나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2001년 4월 6일 서울고등법원 특별4부에서 내려진 판결의 기사보도(인터넷 법률신문 홈페이지 기사 4월 12일자)를 아래 제시하니 읽어 보십시오.

 서울고법 특별4부(재판장 이홍훈·李鴻薰 부장판사)는 6일 식당 주방장으로 일하다 하반신마비를 일으킨 오모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청구소송(2000누4431)에서 1심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승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는 환갑에 가까운 나이에 1년중 6일밖에 쉬지 못하면서 매일 10시간씩 고온고습의 작업환경에서 위험한 주방기구를 다루고 10여명의 종업원들을 감독하는 주방실장으로서 육체적으로 과로하고 정신적으로도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할 것"이라며 "다른 발병원인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고의 질환인 척수허혈성경색증이 기존질환이나 당뇨 등 다른 유발인자만에 의해 발생했다는 근로복지공단의 입증이 없는 이상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한 요양제도가 손해의 공평한 분담을 목적으로 하는 손해배상과 달리 사회보장제도의 하나로 실시되는 점, 과로와 스트레스가 구체적으로 특정질병의 원인이 됐다는 점을 의학적으로 완벽하게 밝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점 등을 감안하면 과로와 과도한 스트레스가 동맥경화를 유발했다고 볼 수 없다거나 또는 원고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흡연, 당뇨 등의 유발인자만에 의해 동맥경화가 발생했다는 점에 대해 피고의 입증이 없는 이상 원고의 질병은 업무상재해에 해당된다"며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경우 그 입증책임이 근로복지공단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판결에서 이르다시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 요양급여제도는 ‘사회보장 제도’의 하나입니다. 만약 엄격한 계약에 기하여 서로의 잘잘못의 양과 질을 따지고,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사항인가를 가리기로 말한다면, ‘인과관계’의 인정 여부를 엄격히 따질 필요가 있습니다. 원고의 이익이 피고의 손해를 의미하는 민사소송문제에서도 그렇거니와, 한 사람의 유무죄가 걸린 형사소송문제에서는 특히 그렇지요.

  

 그런데, 사회보장제도라는 테두리 내에서는 인과관계에 관한 입증 문제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인가?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산업재해보상을 받기 위하여 업무와 재해발생사실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점은 당연한 것입니다. 업무와 인과관계가 없는 일에 대해서까지 ‘산재보험’이 보험금을 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인과관계를 누가 입증할 것이냐 하는 입증책임의 부담을 원피고 간에 바꾸었다는 것이 위에 소개한 고등법원 판례의 태도입니다.

  

 그러면, 과연 인과관계의 입증책임부담을 근로복지공단측에 둠으로써 생기는 효과는 무엇인지 말씀드려야겠군요.

  

 원래 인과관계 입증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진실을 제대로 증명 못함으로써 원하는 판결을 받지 못할 위험은 있게 마련이죠. 그렇다면 원고와 피고 중에서 누구에게 그 위험을 부담시킬 것인가? 그것이 소송법학에서 늘 고민하는 문제이며 대체로 권리발생요건사실은 권리주장자 측에게, 항변사실은 상대방측에게 입증책임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인과관계’는 권리발생요건사실에 해당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같은 민사적 법률관계에서는 피해자가 원고로서 가해자를 상대로 하여 가해자의 잘못된 행위와 자신이 입은 피해상황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음을 입증함으로써 자신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받으려고 노력합니다. 이 중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하면? 권리 인정을 못 받는 것이죠. 배상금을 못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환경오염으로 인한 공해소송이라든지, 의료사고 소송 같은 경우에는 대개 가해자가 기관이거나 유력한 전문적 지식을 가진 당사자임에 반하여 피해자는 개인으로서 전문지식이 없다 보니, 상대방 가해자(로 지목된 자)의 잘못을 밝혀내기도 어렵거니와 그 잘못과 자신의 피해사이의 객관적으로 인과관계를 입증해내기가 어렵고, 그것은 ‘변호사’를 사용하더라도 역시 어려운 일입니다. 애당초 각종 증거가 ‘상대방’의 영역에 물리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조작의 유혹이 많을 것이거든요. (예를 들면 공해물질의 은폐, 변질의약품이나 진료기록의 파기 등) 그래서, 이러한 입증방해행위가 있었음이 드러나면 곧 인과관계가 추정되는 것으로 보자는 학설도 있지만, 대법원판례는 그러한 입증방해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증거자료로 삼아 ‘방해자측에게 불리한 평가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할 뿐이고 입증책임이 전환되거나 상대방의 주장사실을 증명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1999. 4. 13 판결 98다9915).

 

 어쨌든, 우리 나라 대법원의 입장은 ‘의료행위에 있어서의 잘못을 원인으로 한 불법행위책임이 성립하기 위하여는… 먼저 환자측에서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두고 일련의 의료행위 과정에 의료상의 과실 있는 행위가 있었고 그 행위와 손해의 발생 사이에 다른 원인이 개재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여야 한다’고 합니다(상기 판결). 여기서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두고”라는 것은 자연과학적지식이나 의료전문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님은 당연합니다. 의료사고를 주장하는 피해자는 ‘일반인’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런 지식을 요구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정당하지 않거든요. 그런 지식 부분은 반대로 의료인측에게 요구해야 타당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피해자 측에서 일정한 혐의를 둘만한 가해자의 비정상적 행위사실의 존재를 입증하면, 그것과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었다고는 하지 못하더라도, 인과관계를 “일응 추정” 하는 이론도 있습니다. “일응 추정”이라는 말은 풀어서 얘기하면 “아마 그럴 거야”하는 정도의 얘기입니다만, 재판관이 그렇게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이른바 ‘심증’이 갈 뿐만 아니라 이를 근거로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상대방(가해자) 측에서 반대증거들을 제시하여 ‘인과관계 부존재’를 입증하려고 노력하여야 하며, 이 노력이 성공하지 못하면 피해자의 주장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제는 소재를 바꾸어, 보험금과 관련하여 한번 얘기해 볼까요?

  자동차사고가 났을 때, 피해자가 가해자의 보험회사를 상대로 보험금 지급청구를 직접 하는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피해자는 사고로 인해 팔을 다쳤다고 주장한다고 칩시다.

 사고 사실 입증은 쉽습니다. 다친 상태도 증명하기 쉬워 보이겠지요. 그러나, 과연 자동차사고로 인해 팔이 다친 것인지, 아니면 사고 후에 자기 혼자 움직이다가 다친 것인지, 그래서 피해자가 치료비를 벌어 보려고 우겨 대는 것인지 과연 인과관계를 따져 보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때, 피해자와 보험회사는 다툽니다. 보험회사가 가난한 선의의 피해자를 괴롭히려고, 돈 안 내놓으려고 다투는 걸까요? 아니지요. 일단, 보험회사로서는 보험단체내의 선량한 가입자들의 몫을 유지하기 위하여 ‘진정한 사고와 피해’에 대하여만 보상을 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보험회사가 평소에 받아 모으는 ‘보험료’가 수많은 사람들의 평균적인 위험도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할 것을 예정하고 계산하여 비례적으로 수합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엉터리 같은 사고에 대하여 보험금을 주게 되면 보험회사는 손해를 보는데, 보험회사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다른 보험가입자들에게 더 많은 보험료를 걷게 되겠고, 그러면 결국은 선량한 사람들이 낸 보험료의 일부가 엉터리 위장사고자에게 보험금으로 지급되는 결과가 되니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명명백백히 인과관계를 따져 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선의의 피해자가 정말로 사고로 인해 피해를 입었는데,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사실과 논리를 충분히 제시할 수가 없었다고 칩시다. 그래서 보험회사가 승소하면 보험금을 안 주어도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수많은 보험가입자들의 공동재산이라 할 수 있는 보험회사의 재산은 유지되겠지만, 진실로 보험보호를 받을 가치가 있던 한 사람은 억울한 눈물을 뿌리고 법과 제도를 불신하게 됨은 물론 금전적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을까요?

 

 진실은,… 정말로 진실은…. 신만이 아실지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피해자측 얘기도 그럴 듯하고 보험사측 얘기도 그럴 듯하고… 다 옳아 보이는 경우라면? 또는 다 틀린 것 같기도 한 경우라면?

  

 이 때, 우리는 확률적인 고려를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과관계가 실제로 있지만 피해주장자가 능력부족으로 제대로 그 존재를 입증 못하였을 때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의 확률과 사회적 효과를 생각해 보십시오.

  또한 그 대신 ‘인과관계가 실제로 없지만 보험회사측이 제대로 그 부존재를 입증 못하였을 때 보험금을 주게 되는 경우’의 확률과 사회적 효과도 생각해 보십시오.

  

 첫번째 케이스는 한 사람이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대신, 보험회사 너머에 있는 많은 보험가입자들이 (남에게 줄) 돈을 아끼게 되는 효과가 있지요.

 두번째 케이스는 한 사람이 사기적으로 보험금을 받는 대신, 보험가입자들이 (남에게) 돈을 조금씩 나누어 빼앗기는 효과가 있습니다.

  

 ‘불행’의 측면에서 보면 첫번째 케이스는 한 사람이 무척 많이 원통해 할 것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주 조금씩 돈을 아낀 것이 되어 즐겁겠지요.(큰 불행 + 작은 행복 무더기)

 그러나, 두번째 케이스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주 조금씩 불행해지겠지만 개별적으로는 잘 실감하지 못하겠고, 한 사람이 부당하게 큰 기쁨을 누리겠지요. (작은 불행 무더기 + 큰 행복)

  

 따라서, 보험사건을 다루는 ‘재판관’의 입장에서는 판단 내리기 애매할 때 어느 쪽으로 승소판결을 내릴 것인가 고민할 때 위와 같은 생각에 이르게 되면, 두 경우 다 잘못일 가능성이 있다면 … “에라, 웬만하면 “큰 불행”을 만들지 않는 쪽으로 안전하게 가자~!”라고 결심하게 됩니다. 그것이 판사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안전한 판결’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인과관계의 입증책임(입증 못하면 소송에서 질 위험부담)을 ‘다수자’ 또는 ‘강자’측으로 돌리게 되고, 따라서 ‘소수자’ 또는 ‘약자’를 도와 주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생각이 때로는 ‘약자를 위한 배려’라고 포장되기도 하고 ‘규범적, 사회적 인과관계’라거나 ‘사회통념’이라는 등의 말로써 원래는 ‘논리적’이고 ‘자연과학적’인 용어였던 ‘인과관계’를 법학의 세계 내에서 변형시키기도 하는 것이지요.

  

 저는 B형간염바이러스와 관련하여 산재보험금 청구 등과 인과관계가 거론된 사건들에 관한 판결들을 여러 개 조사하여 보았습니다.

 살펴 보면 분명히 산재의 입증책임의 존재는 근로자측에게 있는데, 그 입증수준과 관련하여 보면 완화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법무법인 ‘한강’ 최재천(崔載千) 변호사도 “아직까지는 업무와 질병과의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이 근로자측에 있다”면서도 “그러나 입증수준은 직접증거가 아닌 간접증거에 의해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정도의 추정’을 이끌어낼 정도면 무방하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세계일보 2001년 4월 27일 [법과생활] 관련 기사에서).

 

 1997. 5. 28 선고 97누10판결은, B형간염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일상적으로 음주를 할 필요가 있는 업무(회사의 노무팀장 및 업무과장)’에 종사하다가 간암으로 진행되어 사망한 사안입니다. 이 사건의 원심(서울고법 1996. 11. 22선고 95구33810판결)은 원고가 ‘B형간염바이러스건강보유자’였다가 간암에 걸린 것이고 ‘대한의사협회장’의 사실조회결과에 근거하여 ‘음주를 할 필요가 있는 업무’로 인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보지 않았는데, 대법원은 이 때 ‘이른바 건강바이러스 보유자라는 것이 어떠한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에 관하여 뚜렷한 자료가 없어서 (모르겠다)’고 하며,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음주나 과로에 의하여 ‘병이 악화될 수 있는 상태에 있었던 것은 아닌지 따져 보아야 했다’고 판시하고,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과다한 음주를 한 탓으로 간염이 자연적인 악화의 정도를 넘어서서 급격하게 악화되었다고 볼 소지가 있다고 생각된다’라고 판시하며 원심을 파기하였습니다.

 이 판례에서 제가 밑줄 친 부분을 보면, 우리 나라 법원은 사망자에게 관대한 법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병에 걸렸으면 쉬면서 요양을 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어서 계속 일을 하게 되면 병이 악화되겠지요. 병이란 것이 사망 전의 어느 순간에는 늘 급격한 악화를 할 테지요? 그러나, 그럴 때, 자상한 우리 법원은 ‘급격한 악화’라는 말을 써서 비정상적인 상황이 업무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치부하고 웬만하면 ‘산재보험금’을 피해자에게 지급할 수 있게 논리를 세우는 것이지요. 과연 ‘사회보장제도’답게 불우이웃돕기의 분위기로 흐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1997. 2. 28 선고 96누14883판결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소정의 ‘업무상의 재해’라 함은 재해와 업무와의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입증하여야 하지만, 그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하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근로자의 취업 당시의 건강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원인물질이 있었는지 여부, 근무기간 등 제반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또는 그에 따른 사망)과의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입증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판례에서 제가 밑줄 친 부분을 보면 ‘추단’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런 표현은 1996. 4. 16 선고 95구27044판결이나 1995. 3. 14 선고 94누 7935판결, 1994. 8. 26 선고 94누2633판결에서도 이미 나온 것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추단”이란 ‘짐작하여 판단한다’라는 뜻입니다.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판단이 아니니까 따지고 보면, 사실상 주관적 판단이 되겠지요. 하지만, 법관이라는 ‘객관적 관점을 늘 유지하고 있는 판단전문가’의 주관적 판단이니까 이를 객관적 판단에 치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법원은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싶겠지요?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어차피 객관적 사실을 아무도 입증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가장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한다고 자부하는 법원의 ‘주관적 판단’이 그 객관적 사실의 결여를 메워주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공무원연금법관련 사건입니다만, 그보다 더 전에는 하급법원에서 심지어 ‘돌연사의 경우처럼 사전 및 사후검사에서도 사인이 될 병변이 밝혀지지 아니한 경우라 하더라도 직무상과로가 유인이 되어 아직 밝혀지지 아니한 그 어떠한 질병을 급속히 유발하였거나 악화시킨 것으로 보아야 할 경우라면 공무와 사망과의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함이 상당하다’라는 판결을 내린 적도 있습니다(1993. 9. 8. 93 구 14471판결) 이 역시 연금제도가 사회보장제도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너그러이 받아들여진 판결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사건에서 ‘…으로 보아야 할 경우’라는 말도 ‘…으로 추단된다면’이라는 말과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래의 기사를 잠시 보시면 의사분들은 다소 놀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운 날씨에서  모닥불 쬐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67세의 남자분에게 승소판결을 내린 사례입니다.

 

아래 기사는 웹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작업중 모닥불 쬐다 사망해도 산재”

 

서울 행정법원 행정3단독 서태환 판사는 28일 혹한속에서 작업중 몸을 녹이기 위해 모닥불을 쬐다 심장마비로 숨진 임모(61·여)씨의 남편 전모(67)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보상일시금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임씨에게 밝혀지지 않은 심장질환이 있었다 해도 추운 날씨속에서 작업을 강행한 점이 지병을 악화시켰고 모닥불을 쬐는 과정에서 추위로 수축됐던 말초혈관이 갑자기 확장되면서 혈액이 소화기관으로 몰리는 바람에 전신이 허혈 상태에 빠져 숨진 것으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작업인부들이 임의로 모닥불을 지폈다고 해도 이는 본래 업무와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생리적 행위 또는 합리적.필요적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업주의 지배관리 범위를 벗어난 휴게시간 중의 재해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S골프클럽 건설공사 현장에서 방수공으로 일하던 임씨는 지난해 1월8일 영하 11도를 밑도는 혹한속에서 작업을 하던 중 점심식사를 마치고 추위를 피하기 위해 건물 1층에 동료들과 모닥불을 피워놓고 휴식을 취하다 심장마비로 숨졌으며, 근로복지공단이 "자연돌발적으로 발생한 심장마비"라며 보상금 지급을 거절하자 남편이 소송을 냈다. <연합>

 

과로가 질병 자체를 유발한 경우로 볼 수 없더라도 질병을 악화시킨 경우도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보는 판결은 예전부터 있었고, 최근에도 나왔습니다. 아래 기사는 웹사이트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 http://khan1.khan.co.kr/news/view.khn?artid=200106280726581&code=620000 )


 

“과로로 질병악화돼도 업무상재해”

 

질병의 주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업무로 인한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을 악화시켰다면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강신욱 대법관)는 4일 모 지방방송사의 전산요원으로 근무하다간암으로 사망한 최모씨의 부인(43)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산재요양불승인처분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를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최씨는 B형 간염에 감염된 상태에서 계속되는 근무로 육체적 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지속돼 간염이 정상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악화,결국 간암으로 사망했으므로 업무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97년 10월 B형 간염이 악화돼 간암 판정을 받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의업무상 재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신청을 했으나 ‘업무상 재해가 아니다’는 이유로 요양불승인 처분이 내려졌고 98년 7월 사망하자 부인이 소송을 냈다.

 연합〉

 ( http://khan1.khan.co.kr/news/view.khn?artid=200108041000281&code=620000 )

 

 이러한 법원의 입장은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관대한 법관들이 불우한 피해자에게 가능한 한 사회적 보장을 많이 베풀어 주려는 태도로 보입니다. 그리고, 명명백백한 객관적 사실이 부존재한(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 또는 근로자에게 보험혜택을 주는 쪽으로 판결을 내리는 것은 앞에서 보았듯이 ‘안전한 판결’을 선택하는 것이 됩니다.

  

 한상율 선생님은 제게 편지로 질문한 내용 중에서 그러한 판결의 태도를 바꿀 수는 없겠는지 물어 보셨습니다.

 물론, 법원의 판결은 다른 새로운 판결을 통해서 바뀔 수도 있겠지만, 그러려면 새로운 근거가 필요한데, 제 생각엔 아마도 ‘재해를 입은 당사자’의 과실책임을 고려하여 보상금 급여를 양적으로 제한한다거나 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으나, 아예 B형간염 바이러스 건강보균자 부분에 관하여만 판결을 바꾸려면, 의료건강과 관련된 이 부분 상식이 바뀌는 수 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의사들이 의료과오소송을 두려워하여 방어진료를 하듯이 기업이 간염바이러스 건강보균자의 취업을 제한하는 관행이 생길까 우려하셨습니다. 그래서, 편법적이지만 기업의 입장에서 취업시에 ‘회사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으면 어떠냐’ 하는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만, 이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러한 각서가 ‘사실상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약하는 상황’에서 작성될 것이기 때문에 무효라는 주장이 가능하고, 그러한 사례들이 나오면 어차피 기업이 아예 그러한 각서를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정말로 과중한 업무가 근로자의 B형간염을 간암으로 진행시킨 경우가 있다면, 그러한 각서가 피해자를 옭아매어서는 안 되겠지요.

  

 산업재해가 난 경우에,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보험금이 지급되는 것은 업종별로 소득금액에 따라 할당된 보험료를 기초로 하여 피해자에게 생활보장을 위한 돈을 주는 것이고, 따라서, 세금을 거두어 불우이웃을 돕는 것 같은 공적 부조로서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래서, 재판에서도 엄격한 인과관계입증책임을 피해자에게 지우지 않고, 웬만한 사실만 입증하면 권리를 인정해 줄 수 있도록 인과관계 존재 추단(추정)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산재가 많이 나간 회사는 산재보험료 분담액이 할증되는 제도가 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산재발생가능성이 있는 자의 채용을 꺼리고자 할 것입니다. 따라서, 채용을 꺼리는 사태를 막는 원천적 해결은 산재보험료 분담액 할증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B형간염바이러스가 간암이 되었다고 하여 산재보험료 분담액 할증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러나, 이런 식으로 개별 질병 마다 어떤 것은 할증대상이고 다른 어떤 것은 할증대상이 아닌지를 규정하려면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입니다.

  

 제가 ‘B형간염바이러스건강보균자의 취업자유침해에 관한 어느 법학도의 생각’이라는 글을 전에 쓴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도 언급했다시피 사회적 민간기업의 채용상 차별을 철폐하려면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해 B형 간염과 관련한 언론보도나 다큐멘터리 방송이 필요하겠지요. 의사분들의 노력은 그 중 선두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법정에서나 산업현장에서 계속적으로 반영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로써 제 글을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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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간염보유자가 겪는 취업문제 윤구현 2007.12.27 6803
36 B형간염보유자의 취업문제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답변 [3] 윤구현 2007.12.27 17019
35 B형간염보유자의 취업문제에 대한 노동부의 답변 [1] 윤구현 2007.12.27 12435
34 간염관련 공무원채용신체검사 판정기준 윤구현 2007.12.27 15831
33 공무원-공무원채용신체검사규정, 공무원채용신체검사업무처리요람 [1] file 윤구현 2007.12.27 20445
32 공무원의 임용유예-일반직, 지방공무원, 소방, 외무, 교육, 경찰공무원 윤구현 2007.12.27 13038
31 건강진단결과서(보건증)-위생분야종사자등의건강진단규칙중개정령 [1] 윤구현 2007.12.27 11944
30 위생분야종사자 등의 건강진단(보건증)시 B형간염 관련 진단 해석지침 [1] 윤구현 2007.12.27 13082
29 교사 윤구현 2007.12.27 12161
28 의료인 -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윤구현 2007.12.27 11942
27 약사 윤구현 2007.12.27 6166
26 의료기사등 -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치과기공사, 치과위생사, 의무기록사, 안경사 윤구현 2007.12.27 9350
25 영양사 file 윤구현 2007.12.27 9090
24 위생사 윤구현 2007.12.27 6009
23 이 · 미용사 윤구현 2007.12.27 6700
22 보육교사등 어린이집 근무자 - 서울시, 국립보건원, 여성가족부의 답변 윤구현 2007.12.27 11915
21 조종사-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의 조종사 신체검사에 대한 건설교통부의 답변 윤구현 2007.12.27 6906
20 선원-선원 신체검사와 B형간염에 대한 해양수산부의 의견 윤구현 2007.12.27 7743
19 전염병예방법 file 윤구현 2007.12.27 7350
18 전염병예방법시행령 [1] file 윤구현 2007.12.27 6188
17 전염병예방법시행규칙 file 윤구현 2007.12.27 6744
16 전염병예방법개정에 따른 첨부자료-전염병예방법시행규칙개정 2000년10월5일 윤구현 2007.12.27 6349
15 B형간염 업무종사제한규정 폐지와 관련된 전염병예방법 개정에 따른 질병관리지침 윤구현 2007.12.27 7078
14 산업안전보건법 file 윤구현 2007.12.27 7094
13 산업안전보건법시행령 file 윤구현 2007.12.27 5703
12 산업안전보건법시행규칙 file 윤구현 2007.12.27 7715
11 채용신체검사와 관련한 미국 장애인법의 규정내용 요약 file 윤구현 2007.12.27 7131
10 B형간염건강보균자의 취업자유침해에 관한 어느 법학도의 생각 윤구현 2007.12.27 8670
9 B형간염바이러스 보균자의 취업에 대한 의사들의 생각 윤구현 2007.12.27 12677
8 B형간염바이러스보유자의 취업차별에 대한 국정감사 속기록 발췌 윤구현 2007.12.27 6372
7 2000년 국립보건원,국립의료원 국정감사 리포트(김홍신의원) 윤구현 2007.12.27 6151
6 기고-간질환에 대한 업무상 질병인정기준 윤구현 2007.12.27 8201
5 간질환관련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 - 근로복지공단용역연구보고서. 대한간학회. 2001. file 윤구현 2007.12.27 6305
» 기고 - 산업재해보상과 인관관계에 관한 법원 판결에 대한 소견 윤구현 2007.12.27 6747
3 B형간염의 직업성 질환 file 윤구현 2007.12.27 9342
2 간질환의 업무 적합성(요약) 윤구현 2007.12.27 7367
1 간질환으로 인한 업무상 재해 판례 윤구현 2007.12.27 7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