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질환관련사회적문제 만성간질환자가 겪는 사회적 문제 - 한빛내과의원 한상율
2007.12.28 00:45
한빛내과의원 한상율
(handor@hanmir.com)
이 글은 2001년 10월 20일 제2회 간의 날 기념 심포지엄 '우리나라 간질환의 현황 및
문제점'에서 발표한 자료입니다.
처음 올린 날: 2001-10-22
만성 간질환 환자들은 건강상의 문제 외에도 다양한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이런 문제는 대부분
만성 간질환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생긴 것이다. 잘못된 인식이 생기고 확산되게 한 책임을 져야할 의료계, 국가, 사회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아 이들의 문제는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바이러스성 간질환 중 A형 간염은 만성 상태가 없어 장기적으로
문제되는 경우가 없고, C형 간염의 경우에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데다 대부분의 신체검사항목에 들어있지 않아 간기능검사에 이상만 없으면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러나 B형 간염은 일종의 사회적 낙인(stigma)이 찍힌 병으로 B형 간염 환자들이 겪은 어려움은 다른
만성 간질환 환자보다 훨씬 크다. B형 간염 환자 중 만성 간염, 간경변증 등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아무런 증상도 없는 B형간염바이러스
무증상 보유자까지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B형간염바이러스에 의한 만성 간질환 중에서 임상적으로 가장 가벼운 상태인
B형간염바이러스 무증상 보유자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으로도 만성 간질환 환자가 사회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의 대부분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의 차별철폐에 관한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경험한 것과 다른 홈페이지의 글을 중심으로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가 겪는 문제를
살펴본다.1), 2), 3)
우리나라에 흔한 간질환
우리나라에 흔한 간질환의 경과와 전염경로 및 예방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4)
◎ 바이러스성 간질환
간염을 일으킨 바이러스에 따라 A형 간염, B형 간염, C형
간염, D형 간염, E형 간염, G형 간염으로 구분한다. A형 간염과 E형 간염은 급성 간염만 일으키지만 B형 간염, C형 간염, D형 간염,
G형 간염은 급성 간염뿐 아니라 만성 간염도 일으킨다. 우리나라에는 B형 간염이 가장 흔하며 C형 간염, A형 간염도
많다.
1. A형 간염
만성 간염으로 진행되지 않으며 회복된 후에는 재발하지 않고 평생 동안
면역된다.
오염된 음식물을 통하여 전염되므로 항상 정결한 위생관념이 필요하고 환자가 발생하면 환자의 배설물은 철저하게 위생처리를
해야 한다. 예방주사를 맞으면 A형 간염에 걸리지 않게 되므로 허약한 사람이나 감염원에 자주 노출되는 사람은 A형 간염 예방주사를 맞을 필요가
있다.
2. B형 간염
환자의 면역상태, 연령에 따라 만성 간염으로 이행되는 비율에 많은 차이가 있는데 성인은 약
5%, 신생아는 약 95%가 만성 간염으로 이행된다. 만성 간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간경변증이 발생하며 일부는 간암으로 이행된다.
환자의 혈액, 체액, 분비물로 전염되며, 성행위로도 전염되지만 음식물을 통해서는 전염되지 않는다.
예방을 위해서 가장
좋은 예방법은 미리 예방주사를 맞는 일이다. 그러므로 모든 신생아에게 B형간염예방주사(백신)를 접종해야 하고 성인도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수직감염을 막기 위하여 B형 간염 산모에서 태어나는 신생아는 면역 글로불린(HBIG)을 함께 주사해야 한다. 정결한 위생관념과 안전한 성생활이
필요하다.
3. C형 간염
일반적으로 간염의 정도는 심하지 않으나 오래 끌며, 만성 간염으로 이행되는 비율이 매우
높아 성인의 경우 약 50% - 80%에 이른다. 만성 간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간경변증이 발생되며 일부는 간암으로
이행된다.
전염경로는 B형 간염과 비슷하지만 어떻게 전염되었는지 확인할 수가 없는 경우도 많다.
아직 효과적인
예방주사가 없으므로 예방을 위해서는 항상 정결한 위생관념이 필요하다. 환자의 혈액이나 분비물, 성행위로 전염되므로 혈액이나 분비물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안전한 성생활이 요구된다
◎ 지방간
과도한 음주습관이나 비만이 원인이 되며 그 외 당뇨병 등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 알코올성 간질환
아무런 증상이 없어도 간경변증이나 간암으로 진행될 수가 있다.
과음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고 술의 종류와 관계없이 마신 양에 따라 알코올성 간질환이 발생하므로 과음을 피하는 것이
예방책이다.
◎ 간경변증
간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만성 간염이 오랜 기간동안 지속됨에 따라
발생하므로 간경변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만성 간질환을 예방하고 적절히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 간 암
우리나라에서
간암발생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B형 간염과 C형 간염이다. 따라서 간암을 예방하려면 이들 간염을 예방하고 만성 간질환을 적절히 관리해야
한다.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가 겪는 문제들
◈ 취 업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 취업하고자 할 때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는 난관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다. 그때까지 건강하다고 생각하고 별 불편 없이 생활했으며 건강한 사람만이 하는 것으로 알고있는 군복무까지
마쳤는데 취업에 실패하면 심리적 타격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게다가 그 회사만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를 채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다른
대부분의 회사도 그렇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전공한 것을 살리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과 이루고자 했던 꿈이 깨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좌절함은 물론
사회에 대한 배신감까지 느끼게 된다. 물론 처음에 들어가고자 했던 회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보다 조건이 나쁜 회사에 들어가거나 직업을 가지지
못하게 되어 생기는 경제적 손실과 자존심의 손상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의 취업신체검사에서는 작업능력과 관련된 신체적
조건보다 내과적인 질환을 가려내는데 더 치중하는 경향이 있으며5) 내과적 질환 중에서도 간질환은 고혈압이나 당뇨병에 비하여
부적합 판정을 받는 비율이 더 높다.6)
2000년 전반기까지만 해도 e항원이 양성인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는
간기능이 정상이고 아무런 증상이 없더라도 대부분 민간기업이나 공기업은 물론이고 공무원으로 취업할 수도 없었다. 상황이 조금 나아진 것은
2000년 10월 5일 전염병예방법시행규칙이 개정되어 발병기간에 취업을 금하는 질병에서 B형 간염이 제외된 후의
일이다.7)
법령개정을 전후한 국립보건원 등 관계당국의 노력으로 2000년부터 B형 간염 환자도 취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거듭 보도되었다.8), 9), 10)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B형 간염 환자가 취업할 때 아무런 제한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개선된 것은 공무원과 공기업의 경우 뿐, 신규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간기업은 몇몇 기업만 달라졌을 뿐
대부분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게다가 요즈음 불경기로 사원채용이 줄어들어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가 겪는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이렇게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의 수에 대하여 조사한 바가 없어 정확한 자료는 없으나 20대 인구(8,204,245 명 -
1998년 보건복지통계연보)와 B형 간염 유병률(약 5%)을 근거로 약 40만 명에 이른다는 추계가
있다.11)
1993년에 포항시의 어느 건강진단기관에서 시행한 채용검진 3,261 건 중 불합격자는 62
건이었다. 그 중 만성 간염이 33 건(52.4%),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 1 건(1.6%)으로서 만성 간질환이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다.
같은 연구에서 포항 및 경주 지역 80개 사업장의 보건담당자를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1년간 신규채용한 근로자 1,640 명중
불합격자는 27 명으로 1.6%였는데 그 중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가 8 명, 만성 간염이 1 명으로 역시 만성 간질환이 대다수를 차지함을 알
수 있다.12)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 차별철폐 홈페이지의 2000년도 자료 중에서 B형간염바이러스
표면항원(HBsAg), B형간염바이러스 e항원(HBeAg), 혹은 간기능이상 여부에 따른 채용여부가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 있는 68개 사업장에
대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민간기업의 경우 e항원 양성이면서 간기능 이상이 있을 때 채용하는 곳은 한군데도 없었고, 국가기관 및 공기업은
공무원채용신체검사규정을 적용하여 e항원을 검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표 1).13)
|
HBe 항원 유무 |
간기능검사 |
채용 |
비채용 |
민간기업 |
HBe 항원 양성 |
간기능정상 |
17 |
21 |
간기능이상 |
0 |
2 |
||
HBe 항원 음성 |
간기능정상 |
7 |
2 |
|
간기능이상 |
1 |
2 |
||
HBe항원검사미실시 |
간기능정상 |
4 |
2 |
|
간기능이상 |
0 |
1 |
||
|
계 |
29 |
30 |
|
국가기관 및 공기업 |
HBe 항원 양성 |
간기능정상 |
|
1 |
HBe항원검사미실시 |
간기능정상 |
8 |
|
간질환
중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것은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이면서 간기능에 이상이 있는, 즉 임상적인 만성 간염 환자이다. 그런데 간기능에 이상이
없더라도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이면서 e항원이 양성인 경우에는 소위 활동성 보균자라는 이름이 붙어 민간기업 취업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보다 어려움이 덜한 것은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는 아니면서 간기능에 이상이 있는 경우이며, 심지어 B형간염바이러스 표면항원이 양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취업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에 비하여 C형 간염의 경우에는 신체검사 항목에 제외되어 있기 때문에 간기능에 이상이
있는 경우에는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간기능이 정상이면 취업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2000년도의 한 조사에 의하면 전경련
소속 30대 기업군에 속하는 회사 중 질문에 응답한 40 개 기업 가운데 9 개 기업(22.5%)에서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라는 이유로 채용하지
않은 사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1)
민간기업의 경우 대부분 공무원채용신체검사규정을 근간으로 하여
채용신체검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5) 공무원채용신체검사규정 중 간질환과 관련된 불합격 판정기준은 표 2와 같다.
1. 일반결함 6. 복부장기 및 내장계통 |
민간기업으로는 예외적으로 상당한 간기능 이상이
있는 사람도 채용하는 곳도 있는데 이 기업의 기준은 B형간염바이러스 표면항원이 양성인 경우 SGOT 45 IU/l, SGPT 50 IU/l를
불합격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공무원채용신체검사보다 더 완화된 것이다(표 3).13)
B형간염바이러스 표면항원이나 e항원이 양성인 경우에는 SGOT/SGPT가 60 IU/l 이하이면 합격이고 그보다 높으면 치료받은 후에 다시 신체검사를 받아 입사여부를 판정한다. 표면항원이 음성인 경우에는 SGOT/SGPT가 80 IU/l 이하이면 합격이고 그보다 높으면 치료받은 후에 다시 신체검사를 받아 입사여부를 판정한다. |
공무원을 채용할
때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에 대한 제한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몇가지 문제가 남아있다. 우선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만성 활동성 간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소위 활동성 보균자(e항원이 양성인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를 이렇게 부르는 경우가 많다)와 혼동을 유발하고 있다.
그리고 공무원채용신체검사 업무처리 요람의 '공무원채용신체검사규정 제6호 나목의 불합격판정 대상이 되는 만성활동성간염의 경우에는
전염성 여부와는 관계없이 ... 직무수행이 가능한지 여부를 기준으로 ... 판정'한다는 부분은 공무원채용신체검사규정 제1호 마목의 '유효적절한
치료를 받지 아니한 법정전염병으로서 전염성이 없어지지 아니한 자'와도 서로 모순된다(표 4).15)
◇ 관 련 규 정 |
뿐만 아니라 실제 신체검사기관에서는 직무수행이 가능한지
평가하기보다는 간기능검사 수치를 기계적으로 적용해 판정하여 공무원채용신체검사 업무처리 요람의 본 뜻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간호사의 경우 전염병은 간호사 자격을 취득하는 결격 사유가 아니다.16)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인
간호학과 학생이 자신이 다니는 대학 부속병원의 내과에서 진료를 받으면 간질환을 전공한 담당의사는 간호사로 일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졸업을 앞두고 그 병원에 취업하려고 신체검사를 받으면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라는 이유로 입사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국공립병원과 일부
사립병원을 제외한 많은 종합병원이 e항원이 양성인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를 간호사로 채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병원에서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를 제외한 모든 직원을 e항원이 양성이면 채용하지 않는다.) 간질환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간질환 전문의가 있고 그의 의견을 반영할 것으로
추정되는 의과대학 부속병원조차 의학적 판단에 반하는 채용규정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선원의 경우 신체검사에서 승무에 적당하다는
판정을 받아야 선원으로 일할 수 있다.17) 다른 나라에서는 대부분 B형간염에 대한 검사를 하지 않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신체검사를 할 때 B형간염바이러스 표면항원(HBsAg)을 꼭 검사하도록 하고있다.18) 그러나 판정기준을 정한 법령에는
B형간염바이러스 표면항원에 대한 기준은 정해져있지 않고 신체검사기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맡기는 문제점이 있다.19) 그 결과
많은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가 법적인 근거도 없이 불합격 판정을 받고 취업에 제한을 받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는 영양사나 조리사 자격을 취득하거나 업무에 종사할 수 없었다. 식품위생법의 자격취득 결격사유에 해당되는 데다20)
식품위생법시행규칙에 정한 발병기간 동안 취업을 금하는 질환에도 해당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1년 7월 13일에 식품위생법시행규칙이 개정되어
영양사와 조리사가 발병기간 동안에 취업할 수 없는 질환에서 B형 간염이 제외되었다. 그러나 상위법인 식품위생법에는 영양사와 조리사의 결격사유에
B형 간염이 남아 있다. 현행 법령대로라면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는 영양사나 조리사의 자격을 취득할 수 없는데도 업무에는 종사할 수 있다는
모순이 생긴다. 지금은 신체검사에서 B형 간염검사를 하지 않는 방법으로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 자격을 취득해도 이들이 주로
취업하고자 하는 식음료 관련회사나 호텔 등에서는 채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종사와 스튜어디스는 항공법 상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의 취업을 금하는 내용이 없으나21) 대부분의 국내 항공사에서는 e항원이 양성인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는 간기능이
정상이어도 채용하지 않는다.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에게 취업하기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일단 취업하면 과음을 피하라는 의사의
권유와 음주를 결속강화과 위계확립의 방법으로 생각하고 과음할 것을 강요하는 직장의 음주문화 사이에서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오래 전의 일이지만
입사하여 잘 근무하다가 정기신체검사에서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라는 것이 밝혀져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로 휴직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22) 그렇게 휴직하게 되면 병이 나은 후에 출근하라고 하는데 그 말은 표면항원이 없어진 후에 출근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에게서 표면항원이 없어지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결국 다시 출근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하여 휴직기간이
길어지면 사직하도록 유무형의 압력을 가하므로 결국 직장을 잃는 일도 많았다.
◈ 프라이버시(Privacy)
침해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는 대부분 중고등학교의 신체검사 과정에서 혈액검사를 통하여, 또는 군대에서 헌혈을 한 후에 자신이
보유자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다. 어떤 신체검사에서나 그 내용이 다른 사람에게는 알려지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학교신체검사 관련법에는 '본인
또는 그의 보호자가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라고 되어있을23) 뿐 비밀준수를 강조하지 않고 있다. 대신 일선 교육청의
신체검사 실시 지침에 비밀 보장에 유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24) 교사들의 부주의나 무관심으로 인하여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라는 사실이 다른 학생들에게 알려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심한 경우에는 교사가 그 학생과 음식을 함께 먹거나 접촉하는 것을 피하라고
교육하고 체육시간에는 체육활동을 면제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 결과 사춘기 청소년의 예민한 마음을 상하게 하고 대인관계가 위축되게 한다. 동시에
다른 학생에게는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을 심어주어 사회에서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를 차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한다.
군대에서 헌혈을 하고 결과를 받는 경우에도 상급자가 식기를 구분하여 사용하고 음식을 함께 먹지 않도록 교육함으로서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직장에서 받는 정기신체검사와 채용신체검사의 법적인 근거인 산업안전보건법에도 신체검사결과에
대한 비밀준수를 규정하고 있다.25) 그러나 신체검사 후에 질병상태에 대한 상세한 건강진단결과는 통보하지 않고
판정구분(적합/부적합 등)과 필요한 업무상의 제한 또는 업무조정 내용만을 통보하는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신체검사 내용을 모두 회사에
알리고 있고26) 비밀준수 규정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채용신체검사를 받고 신입사원 연수에 들어갔다가 B형
간염을 이유로 채용이 취소된 사람들의 경험에 의하면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B형 간염 환자라는 사실이 공개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때
당사자들은 무슨 범죄사실이라도 밝혀진 것과 같은 당혹감과 수치심을 느꼈다고 말한다.
이미 취업한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들은
정기신체검사를 통하여 동료들에게 자신이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라는 것이 알려질 것이 두려워 정기신체검사를 기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에
비하여 C형 간염은 신체검사 항목에 포함되지 않아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2001년부터 정기신체검사 항목에 B형 간염이 제외되어 이런
프라이버시 침해 사례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편으로는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의 발견이 늦어지는 부작용도 있을
것이다.
◈ 기 숙 사
대부분의 기숙사는 전염병 환자의 입사를 불허하는 규정을 가지고 있다.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를
입사시키지 않는 기숙사에서는 B형 간염이 법정전염병이고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든다.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를 입사시키는 기숙사의 경우에도 전염성이 없는 경우에만 입사시키면서 학기마다 전염의 우려가 없다는 의사의 소견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중 전염성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전염성이 없다'는 소견서를 써주는 의사는 흔하지
않아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어떤 기숙사에서는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끼리만 생활하도록 방을 일정구역에 모아
배정하기도 한다.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를 아무런 제한 없이 기숙사에 들이는 곳도 있는데 그런 곳 중에는 소위 명문 대학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 이성교제
요즈음 젊은이들은 이성을 사귈 때 적당한 신체접촉은 애정을 확인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들은 키스 등의 신체접촉이 상대방에게 바이러스를 전염시킬까봐 이성교제에 소극적이거나 기왕
교제를 하는 경우에도 접촉을 피하거나 줄임으로서 관계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결혼 전에 이성과 성관계를 갖는 일도 예전보다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성관계를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27) 성관계 후에 B형 간염은 성관계를 통해
전염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어 상대방에 대한 걱정과 죄책감으로 시달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고 B형 간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이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라는 상대에게 사실을 말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성에게 그 사실을 말한 경우
관계가 유지되는 경우와 끝나는 경우의 빈도가 대략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 결 혼
자녀의 배우자가 될 사람이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라는 사실을 부모가 알게 되면 평생 낫지 못할 병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향후 발병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는
일이 있고 그런 상황을 겪으면 결혼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는 유전된다는 오해와 가족 내에서
전염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 때문에 결혼 자체를 망설이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 출산과 육아
B형 간염이
가족성을 띠는 경우가 많아 B형 간염을 유전질환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 중에는 자녀에게 평생 낫지 못할 병을 물려주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출산을 기피하는 경우가 있다. 또 만성 B형 간염에서 진행하는 간경변증이나 간암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이 일찍 사망할 경우
자녀에게 줄 고통을 피하기 위하여 출산을 기피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볼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임신한 며느리가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라는 것이 밝혀지자 손자에게 B형간염바이러스를 전염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시가에 데려가 산모와 떼어놓은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인 산모가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는 것을 금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산모가 듣는 권유는 의사에 따라 달라 산모들은 곤혹스럽다.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인 산모들은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등의 의사에게 서로 다른
권고를 받는데 출산에 관여하는 산부인과 의사의 권고를 가장 많이 받고, 산부인과 의사들은 소아과 의사에 비하여 모유수유를 권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여러 의사로부터 서로 다른 권고를 받으면 산모들은 모유수유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 병 역
징병신체검사규정에 의하면 만성 간질환이 심한 경우는 병역면제, 가벼운 경우는 상근예비역 또는
공익근무요원의 판정을 받게 되며 B형간염바이러스 무증상 보유자는 현역판정을 받게 된다(표 5).
70. 간염(다.·라.에 중복해당하는 경우에는 높은 급수로
판정) |
현역으로 판정을 받은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는 과로나
격무에 의해 간질환이 악화된다고 알고 있으므로 입대하여 훈련과정이나 복무 중에 과로로 인하여 발병하게 되지나 않을까, 발병하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을까 불안해한다.
일단 입대한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는 대부분 별 문제 없이 병역을 마치지만 일부는 식기를 따로 쓰게 하는
등의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우도 있다.
만성 간염으로 병역이 면제된 사람은 훗날 취업할 때 문제가 생기기 쉽다. 취업하려면 병역이
면제된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데 사실대로 설명하면 대부분 취업에 실패한다.
병역의무를 마치기 위하여 대부분 육군에 입대하지만 공군,
해군, 해병대 등에 지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는 입대시키지 않는 해군의 규정으로 인하여 해군이나 해병대를 선호하는 사람도
육군으로 복무할 수 밖에 없다. (예전에는 공군도 해군과 같았으나 2000년에 규정이 바뀌었다.)
군복무 대신 경찰로 근무하는
의무경찰의 경우 일반 의무경찰과 해양경찰 의무경찰 사이에는 적용하는 신체검사규정이 달라 혼선이 있다. 일반 의무경찰은 육군과 같은 규정이
적용되고 해양경찰 의무경찰은 해군의 규정이 적용되므로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는 해양경찰 의무경찰로는 근무할 수 없고 일반 의무경찰로는 근무할 수
있다. 한편 해양경찰 의무경찰과 함께 근무하는 해양경찰의 경우에는 경찰과 같은 신체검사규정(공무원채용신체검사규정과 대동소이함)이 적용되므로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이더라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국 같은 곳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데도 해양경찰은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여도 괜찮고
해양경찰 의무경찰은 결격사유가 되는 것이다.
◈ 생 명 보 험
보험금 지급의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피하려는 보험회사의
역선택으로 인하여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는 대부분의 경우에 생명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예외적으로 보험회사 한두 곳에서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도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을 내놓고 있을 뿐이다.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보험을 계약한 경우에도 보험금을 지급할 사유가
생겼을 때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 의 료 비
만성 B형 간염의 치료제인
라미부딘(Lamivudine)의 국민건강보험 적용기간이 1년으로 제한되어 있는데29) 이는 담당의사가 권하는 적정한
치료기간보다 짧은 경우가 많다. 만약 담당의사의 치료방침에 따라 1년 이상 투약하게 되면 약값 전체를 본인이 지불해야 함으로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
◈ 진 로 선 택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의 경우에 B형 간염이 있으면 취업할 수 없는 직업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진로선택에도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대학의 학과에서 만성 간질환 환자의 입학을 제한하지 않고 있으나
한국항공대학교 항공운항학과에서는 선천성 및 후천성 간질환 환자(모든 간질환이 포함됨)는 입학할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30)
육·해·공군사관학교에서는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를 입학시키지 않으므로 사관학교 진학을 꿈꾸는
학생들은 방향을 바꿀 수 밖에 없다.
성직자를 양성하는 교육기관 중 일부에서는 교육기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므로 전염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를 뽑지 않기도 한다.
원 인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가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특정 집단에 책임이 있거나 한두
가지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신체적 결함이나 병이 있는 사람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소수와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프라이버시 침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가치관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서도 몇 가지 요인을 들면 다음과 같다.
▣ 기 업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가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기업에 있다. 기업에서 수익과 생산성만 중시하면 근무하다가 병이 들어 노동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는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의
채용을 기피할 수 밖에 없다.
이미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원들은 전염병에 걸린 사람과 함께 근무하면 자신에게 병이 전염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의 입사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기존 사원들의 이런 생각은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
채용을 기피하는 사용자의 입장을 강화시켜 준다.
게다가 입사한 만성 간질환 환자에게 간경변증이나 간암이라도 생기면 산업재해로 보상을
해주어야하기 때문에 기업에서는 채용을 더욱 꺼리게 된다. 산업재해 보상에 대한 기업의 이런 우려는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요즈음 산업재해 관련
재판에서는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을 때에는 과로에 의해 병이 악화되었을 가능성을 폭넓게 인정해 피해자에게 유리하게 판정하는 경향이 있다. 과로는
간질환의 경과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널리 알려져 있고 직업에 종사하면서 과로하지 않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어느 회사든 간질환이 악화되는 원인을
제공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기업은 간질환이 있는 사람을 입사시켜 훗날 불리한 판결을 받는 것보다 그런 사람을 아예
채용하지 않고 문제의 소지를 없애는 편이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 경향이 과연 과학적 근거가 있고 타당한 것인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
▣ 정 부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보건문제인 B형 간염을 퇴치하기 위하여 정부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는
비교적 만족스러운 것으로 우리나라의 B형 간염 유병률은 크게 줄어들고 있다. 질병에 걸렸을 때 발생하는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것은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정부는 그런 방법을 사용했고 그것이 B형 간염을 줄이는데 기여했지만 그
부작용으로 사람들은 B형 간염에 대하여 지나친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심지어 이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내용까지 강조하여 B형 간염
환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널리 퍼뜨렸고 사람들이 B형 간염 환자를 피하는 결과를 낳아 환자들에게 고통을 주게
되었다.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가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신체적인 결함을 이유로 취업 등에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는 미국의 장애인법과 같은 제도가 없는 것이다.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가 겪는 어려움은 그들만 겪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질병이나 신체적인 결함을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가 겪는 문제는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질병이나 신체적 결함을 이유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신체적인 결함을 이유로 취업 등에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공감을 형성하고 그런 생각을 뒷받침할 제도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채용신체검사는 근로자를 작업에 배치하기 전에 업무에
적합한지 보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다. 그러나 채용신체검사는 이런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건강하지 못하고 생산성이 낮은 사람을 걸러내는 방법으로
오남용되고 있다.26) 기업이 그렇게 하도록 정부에서 방치한 점 역시 만성 간질환 환자가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원인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다.
▣ 의 료 계
국민에게 질병에 대한 지식을 전파하고 보건의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의료계라는 점에서 의료계 역시 책임을 비켜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권위 있는 전문가 집단에서 질병의 예방과 치료, 그리고 생활에 관한 적절한
지침을 제공하지 않으면 일선에서 일하는 의료인과 국민들 모두 생각과 행동에 혼선이 생기고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의학이 발전함에 따라
만성 간질환에 대해 새로운 사실이 속속 밝혀졌는데, 그 동안 전문가 집단은 시의적절한 지침을 제공하지 못했다.
의학적이든 다른
것이든 환자들과 관련된 문제에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의료계이다. 그들과 관련된 제도를 만들고 개선할 때 의료계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 만성 간질환과 관련된 법령을 제정하거나, 채용신체검사 등의 판정기준을 정할 때 의료계가 적절한 조언을 하였는지, 올바른 제도가
만들어지도록 충분히 노력하였는지 궁금하다.
▣ 언 론
과거 정부에서 B형 간염 퇴치 캠페인을 펼칠 때 그 주된 도구의
하나가 대중매체였다. 언론이 우리나라에서 B형 간염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역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많은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들은 텔레비젼에서 술잔을 돌리면 B형 간염에 전염된다며 술잔 돌리지 말기 캠페인을 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국민에게 B형 간염의 전염과 예방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 주었고 그 결과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가 사회적인 어려움을 겪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제언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그 책임이 특정집단에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 현상이므로 당사자의 노력이나 어느 책임 주체의 변화만으로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는데 크게 기여한 단체와 집단이 관심을 가지고 함께 노력을 계속한다면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 정 부
결자해지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B형 간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없애는데 정부가
앞장서서 노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전염병환자등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그 기본적 권리를 보호하며,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취업제한 등의 불이익을 주어서는 아니된다고 전염병예방법에 명시한 것은 뒤늦은 감이 있지만 환영할만한
일이다.31) 그러나 그 의무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게 국한하여 민간까지 범위를 넓히지 못한 것이 한계점이라고 생각한다.
차차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만성 간질환 뿐 아니라 여하한 질병이나 신체적 결함으로도 차별하는 것을 금하는 제도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런 제도가 만들어질 때까지는 채용신체검사를 채용여부를 가리는 것이 아닌 업무적합성만 평가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도록 제도가 정비되기를 바란다.
만성 간질환 환자의 의료비 부담도 해결해야할 문제이다. 과도한 경제적 부담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자는 국민건강보험의 본래 취지에 충실하게 만성 간질환 환자가 경제적 부담에 시달리지 않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간질환 치료에 대한 지나친 규제를 없애야 한다.
◈ 의 료 계
만성 간질환 환자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B형 간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방법으로는 국민에게 만성 간질환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 치료 및 생활의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이고 확실한 대책이다. 열악한 우리나라의 진료환경 상 제한적일 수 밖에 없긴 하지만
진료실에서 충분한 설명으로 환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민에게 올바른 질병관을 전파해주기 바란다.
의료계에는
채용신체검사 등의 신체검사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신체검사에 관여하는 의료기관에서는 신체검사의 목적과 절차를 잘 알고 충실한
신체검사가 되도록 노력함과 동시에 합리적인 신체검사기준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 언 론
언론이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언론은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가 겪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질병이나 신체적 결함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만성 간질환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전달함으로써 국민이 지닌 B형
간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키기를 바란다.
◈ 기 업
기업은 생산한 상품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그들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것 역시 의미 있는 일이다. 기업은 근거 없는 편견으로 만성 간질환
환자를 배척하지 말고 그들이 능력을 발휘하여 사회에 참여하고 기여하며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바란다.
맺는 글
B형 간염에 대한 편견은 1980년대에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펼친 술잔 돌리지 말기와 같은
간염예방 캠페인에 비롯된 바가 크다. 그 캠페인은 내용이 너무 과장되었으며 대중에게 B형 간염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다.
효과적인 예방법이 없던 당시에는 B형 간염 환자를 피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 예방접종을 통하여 B형 간염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데도 과거의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는 항상 최상의 성능을 유지해야하는
생산시설의 일부도 아니고, 타인에게 병을 옮기고 다니는 위험한 사람도 아니다.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B형간염바이러스를 전염시킬 지도 모른다고
염려하면서 멀리할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이 B형 간염 예방주사를 맞고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우리나라가 B형
간염 뿐 아니라 어떤 신체적 결함이나 질병으로도 차별당하지 않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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