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문제


2000년 3월 10일 이 수 희

1. 들어가며
 B형간염건강보균자에 대한 취업기회제한이 만연해 있는 사회에 대해 꾸준히 비판과 시정을 주장해 오신 내과의사 한상율 선생님의 덕택으로 B형간염 건강보균자의 실태에 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전에는 그런 문제가 있는 지조차 몰랐던 사람으로서 부끄럽습니다만, 알게 된 이후에라도 조금이나마 정의실현에 한 목소리로 동참하여야겠다는 생각에서, 이 문제를 검토해 보고자 합니다.
 이 글에 인용된 보건복지부의 지침이나 법령자료는 한상율 선생님의 홈페이지에 이미 올려져 있는 것을 참조하였음을 밝혀 둡니다.(http://user.chollian.net/~handor)

2. 취업할 기본권의 보장과 제한
(1) 개인의 자유와 권리
 우리 나라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 '신체의 자유' '직업의 자유'등은 개인이 국가나 타인의 방해를 받음이 없이 어떤 직업을 갖고 그 일에 종사하며 행복을 누리고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됩니다.

(2) 국가의 사회보건유지의무
 헌법은 제37조 2항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보나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될 수 있다고 합니다. 특정종류의 직업에 종사할 자유가 제한되는 것도 이러한 목적 및 형식을 통해 가능한 것입니다. (의사가 될 자유도 법률에 의하여 제한적으로 인정되고 있지요.) 그러나, 법률로써 제한할 만한 이유가 없다면 허용되어야 함이 당연합니다.
 사회 전반의 공공복리를 목적으로, 예컨대 인체에 치명적인 전염병이 퍼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가 사회보건을 유지하기 위하여 법률로써 사람들의 신체의 자유나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의 자유 등을 제한하는 것은 일종의 국가의 의무로 이해할 수 있지요.
 그러나, 인체에 치명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는 병(예컨대 홍콩독감)까지도 전염병이라 하여 취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말이 안 될 것입니다.
 또한 기본권과 관련된 취업자격제한 문제는 법률에 근거를 두어야만 합니다.

(3) B형간염 건강보유자의 전염병환자 해당 여부
 B형간염의 경우는 어떠한가요? 전염병인가요? 기본적으로 모든 종류의 질병은 전문가집단인 의학계의 통설을 기준으로 분류되어야 하며, 그 결과가 개정전염병예방법에 열거된 1군∼4군 및 지정 전염병입니다. 의학계에서는 B형간염 건강보유자가 e항원을 가졌고 그것이 활동성이라고 분류된다고 해도 그것이 만성활동성간염 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타인에게 전염시킬 위험도 평상생활에서는 극히 적다고 보고 있습니다. B형간염의 전염성은 과거 우리나라에서 과장되었었으며, 이로 인해 사회전반에 지나친 오해가 생겼던 것이라고 합니다.
 다행히도 현재 B형간염 건강보유자의 취업을 제한하는 '법률'은 전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오직 '전염병환자'에 관하여 취업제한이 다음과 같이 있는데,
  - 전염병 환자는 조리사 또는 영양사가 될 수 없다.(식품위생법 제38조)
  - 전염병 환자는 이용사 또는 미용사의 면허를 받을 수 없다(공중위생법 제9조)
  - 신체검사의 불합격 판정 기준 : 유효적절한 치료를 받지 아니한 법정전염병으로서 전염성이 없어지지 아니한 자.(공무원채용신체검사규정 제4조, 별표)
  - 사업주는 .... 노동부령이 정하는 질병에 이환된 자(전염의 우려가 있는 질병에 걸린 자. 다만, 전염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에 대해서는 의사의 진단에 따라 근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여야 한다.(산업안전보건법 제45조, 시행규칙 제116조)

 보건복지부는 위의 조항들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이 한다고 합니다.
  - B형간염의 경우 "전염병 환자"는 "발병기간 동안의 만성 B형간염 환자"로 해석하고, "B형간염바이러스건강보유자"는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함
       (관리자주 : 2000년 8월 전염병예방법이 개정되면서 발병기간의 만성B형간염 환자도 취업에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 "B형간염"은 수인성 감염(타액을 통한 전파) 또는 일상 생활을 통한 감염의 가능성은 실제로 없으므로 취업을 제한하여야 하는 "전염의 우려가 있는 질병"에 해당하지 않음

 그렇다면 B형간염 건강보유자는 감기환자보다 불리하게 차별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3. 환자 또는 보균자의 채용 거부 문제
 '공무원채용신체검사규정'에 따르면 공무원채용신체검사 규정에서 간질환중에서는 '만성활동성간염'과 '간경변증' 두 가지만 불합격사유로 되어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B형간염 건강보균자의 e항원을 검사하여 그것이 양성이면 '활동성'으로 분류하고 이를 '만성활동성간염'환자와 동일시하고 있는 사례가 있다는데, 이것을 의사들은 옳지 못한 태도라고 비판합니다.
 보건복지부는 위생분야종사자 건강진단에 관한 해석지침에서, B형간염 보균자를 격리시키는 것은 보건학적으로 타당한 방법이 아니라고 합니다. B형간염의 업무종사 제한에 관해서는, B형간염이 일상적인 사회 생활을 통해서는 타인에게 전염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성인의 경우는 감염되었다고 하여도 만성화할 가능성이 높지 않으며, B형간염 예방접종을 받을 경우에는 충분한 방어능력이 생기므로, 결국 만성B형간염의 발병기간 중에 일부 업종에 대해서 업무 종사를 제한하는 것은 전염 예방의 의미보다는 개인의 건강 보호차원에서의 조치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기업의 경우 사업목적에 맞는 인재를 채용해야 할 것이고, 입사의 기회를 모든 사람에게 공개해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술유단자'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소지자' '용모단정하고 신체건강한 자' '해외여행결격 사유없는 자' 등을 요구하는 식으로 일부 사람들만 채용할 수도 있지요. 사기업은 국가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와는 달리 국민에 대하여 기본권을 폭넓게 보장할 의무를 지는 존재는 아닙니다. 남녀고용평등 문제, 최저임금제 등 근로관계법률로 강제되는 것 이외에는 원칙적으로 '계약의 자유'를 통하여 근로계약체결여부가 처리되는 것이죠. 사장이 단지 '난 수험번호 3번 지원자가 맘에 드는군.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불합격처리 해'라고 한다고 해서, 그것을 평등권침해라고 볼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 회사에 도움이 될 사람만을 뽑고 회사에 손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사람은 모두 배제'하겠다는 사기업의 채용지침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사기업에서 인력을 채용할 때, 신체검사를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고 볼 것입니다. 하나는 그 사람이 앞으로 주어질 업무를 감당할 신체적 능력이 있는가를 검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사람이 다른 사원들에게 신체적 피해를 줄 병을 갖고 들어오지는 않는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의 첫번째 검사목적은 '채용 후 업무에 종사하다가 병이 났을 때 업무로 인한 것으로 되어 회사에 배상책임을 지우지는 않을까'하는 문제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회사도 사원이 암이나 간염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퇴사시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일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전염을 시키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심지어 전염성이 높은 '눈병'이나 '독감'의 경우에도 회사는 그 사람에게 계속 일을 시키거나 기껏해야 하루이틀 휴가를 주지, 사표를 쓰라고는 안 합니다. 그렇다면, 채용단계에서도 '일을 할 수 있고, 전염성이 없는' 사람은 비록 환자라고 할 지라도 채용결격이 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급적이면 건강한 사람을 뽑고 질병이 발현된 환자를 탈락시키려는 기업체의 태도는 수긍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질병이 발현되지 않은 상태인 B형간염 건강바이러스 보균자의 경우 채용에 불이익이 주어진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발병의 개연성이 낮다는 사실 및 전염의 위험성이 낮다는 사실 때문이지요. 오직, 사람들의 '잘못된 상식'을 깨뜨려야만 하는 문제입니다.

4. 부당 또는 위법한 채용거부에 대한 법적 대응 수단
 먼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B형간염 건강보유자을 신체검사에서 탈락시킨 경우의 문제입니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는 모두 국가의 기관으로서 '국가'에 해당합니다.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인 '대한민국(국가)'과 구별되는 법인격을 가진 것으로서, '서울특별시', '경기도' 등의 광역지방자치단체와 시, 군, 구 등의 기초지방자치단체로 분류됩니다.
 또한 국가가 설립한 국영기업체(OO공사)도 국민에 대한 관계에서는 국가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아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책임을 지게 되므로, 국가에 준하여 취급하여야 합니다. 국영기업체 근로자가 공무원에 준하여 취급되는 것에 비추어, 국영기업체에 입사하려다가 채용거부된 경우에는 직업선택의 자유는 물론이고 공무담임권의 침해의 성격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국가, 지방자치단체, 국영기업체 등에 들어가려다가 신검에서 탈락한 사람의 경우에는 그 불합격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심판을 거쳐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당해기관에 적용되는 법령에 행정심판에 관한 규정이 없고, 행정소송도 불가하다고 하면, 기본권침해를 이유로 헌법소원을 내는 것도 고려해봐야 합니다.
 그러나, 사기업체들은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들은 국민의 기본권을 일일이 보장하려고 애쓸 의무를 지는 주체가 아니지요. 헌법상 보장된 국민 개개인의 기본권은 국가기관에 대항하여 보장되는 자유권 내지 생존권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기본권이 私人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이론도 있으나, 폭넓게 인정하자는 설은 적고, 남녀차별금지(평등권), 노동기본권 같은 것은 인정된다는 제한적 인정설이 국내 다수설입니다. 그것도, 헌법이 직접 적용되는 것은 예외적이고 대개는 민법 제103조를 거치거나, 근로기준법 등의 개별법률을 거쳐서 개인간의 계약에서도 기본권보호가 이루어진다고 보지요.
 따라서, 사기업에서의 채용과정에서의 편견과 오해로 인해 취업제한이 사실상 존재하고 있더라도 이것이 근로관계법 위반이 아닌 이상 다툴 수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건강상의 문제를 감안하여 불합격 결정을 내린 회사를 상대로 하여 승소하기란 생각하기 힘든 일입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퍼져있는 B형간염바이러스 건강보유자에 대한 통념이 바뀌어야만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5. 결론
 이상에서 논의한 바를 간단히 몇 줄로 요약하고자 합니다.
 B형간염바이러스 건강보유자의 경우 B형간염환자와 동일시되어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것은 '사실적 관행'의 문제입니다. 이미 한상율 의사님이 조사하여 홈페이지에 올려놓으신 자료에서 보다시피 법률상으로는 그러한 동일취급의 근거는 전혀 없는 것이고, 보건사회부에서 만든 해석지침을 보더라도, B형간염바이러스 건강보유자를 채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직업종사환경상 불리한 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B형간염바이러스 건강보유자라는 사정을 이유로 하여 하는 차별은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차별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공무원 선발시에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차별'은 '위법한 차별'이며, '평등권 침해'이고, 이로 인해 구체적 기본권으로서의 '직업선택의 자유' '공무담임권'이 침해된다면, 이는 분명 국가기관 등이 행하는 위법한 행위가 됩니다.
 사기업체의 경우에는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차별'이더라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서, 기본권침해이론으로 법적 대응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오직, 의학적 및 통계적 자료를 통하여 B형간염바이러스 건강보유자의 실상을 정확히 알려서, 일반사회에서도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종래의 그릇된 통념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끝*

  ( 필자소개 : 이수희 : 남 / 32세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사법학과 졸 / 동 대학원 법학석사 / 동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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