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 본 간사랑동우회


[기획 1]‘권리(權利)’라는 단어가 의료 일선에서 자주 등장하는 요즘이다. 병원들이 앞다퉈 ‘환자권리장전’을 제정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노동조합의 나부끼는 빨간 깃발 속에서도 ‘환자권리’는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 만큼 ‘환자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가 높아졌음을 방증한다. 이러한 상황은 환자인권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10여 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복지부동(伏地不動) 정부와 근엄무쌍(謹嚴無雙) 의료계에 맞선 결과물이다.[편집자주]

*서막 열다
환자권리, 환자주권, 환자인권을 논(論)함에 환자단체는 늘 그 중심에 선다.
사실 ‘환자단체’라는 단어의 등장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과거 동변상련의 심정으로 같은 질환 환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던 소모임이 효시다.
막막했던 시절 이들은 안부를 묻거나 좋은 민간요법 정보를 공유하며 서로를 의지했다. 그러던 모임들이 인터넷의 발달로 활성화 되기 시작했다.

접근이 용이한 사이버 공간은 잠재돼 있던 이들의 구심력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네이버, 다음 등 각종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환우모임은 급속히 늘어났다.



‘00환자들의 모임’으로 명명된 사이버 카페 수가 100여 개가 넘을 정도로 인터넷은 환자들 결집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물론 인터넷 등장 이전에도 환자 본인들이 아닌 양심적 공급자단체나 보건의료 노동자의 지원과 후원에 의한 환자단체가 간헐적으로 운영돼 왔다.

하지만 이들 단체는 종속된 이해집단이 처한 상황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경향이 짙어 순도 100%의 환자단체로 활동하는데 한계를 드러냈다.

개별적 환자단체의 부흥기이던 2000년대 초반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름하여 ‘글리벡 투쟁’. 환자들 최초의 약가 투쟁인 이 사건으로 인해 국내 환자단체의 위상은 180° 달라졌다.

환자들은 정부와 약가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제약사에 맞서 글리벡 약가인하 및 한시적 무상공급까지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이 투쟁을 이끌었던 백혈병환우회 역시 소모임에 불과했다. 생사(生死) 기로에 서 있던 이들에게 ‘글리벡’이란 신약은 너무나 절실했고, 그 간절함은 단체행동으로 이어졌다.

소모임이었던 백혈병 환자들은 보다 싼 가격에 신약을 얻기 위해 글리벡연대를 결성했고, 토론회는 물론 헌법소원, 인권위 진정서 제출 등 본격적인 투쟁을 통해 끝내 목표를 달성했다.

무엇보다 약가정책 등에서 도외시됐던 환자들의 목소리가 이 사건을 계기로 적극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국내 환자인권운동의 기폭제로 평가 받는다.

당시 글리벡 투쟁을 이끌었던 건강세상네트워크 강주성 고문은 “의약품은 상품이 아니라 권리라는 원칙을 각인시킨게 가장 큰 의미”라며 “환자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은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봇물 이루다
최초 환자인권운동의 시원스런 성공을 목도한 환자들의 단체 결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대부분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서 모임을 시작, 세(勢)가 확대되면 정식 홈페이지를 갖추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는 형태를 취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베체트환우회, 한국코엠회, 한국GIST환우회, 강직성척추염환우회, 한국다발성경화증환우회 등이 대표적인 사례.

이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신환자들이 궁금해하는 질환정보는 물론 보험급여 개선을 위한 결집을 도모하는 등 적극적인 환자단체의 위상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포털사이트에서 운영되는 소소한 환자단체까지 합하면 현재 국내에는 수 백개에 달하는 환자단체들이 각기 다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5개 환자단체가 연합한 8만2524명 규모의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출범, 본격적인 ‘의료소비자 주권시대’를 예고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 모임의 형태도 세분화되고 있다. 단순히 동일질환 모임에서 벗어나 특정 시술에 대한 지지, 혹은 반대 목소리를 내기 위한 단체도 여럿 등장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미용성형 수술의 피해자들이 모여 보상대책을 논의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환자인권운동을 전개하는 양상이다.

실제 ‘라식부작용’, ‘IPL부작용’, ‘눈미백 수술 부작용 환자 모임’, ‘성형 피해자 권리찾기 모임’ 등의 회원들은 ‘보상’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거나 공동대응해 나가고 있다.

‘눈미백 수술 부작용 환자 모임’의 한 회원은 “현재 집단소송을 준비 중에 있는데 최근 해당 병원이 문을 닫은 후 참여 희망자가 급속히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8년에는 종아리 근육퇴출술 부작용과 관련해 27명의 환자가 시술 의사를 상대로 제기한 집단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억1000만원의 배상 판결이 내려지기도 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우려
이들 환자단체는 ‘환자인권’을 제창하며 그 동안 선 굵은 성과들을 이뤄냈다. 

백혈병치료제 ‘글리벡’ 이후 폐암치료제 ‘이레사’의 보험적용에서도 승리를 거뒀고, 간사랑동우회와 B형간염동호회는 간염 보균자 취업 차별 투쟁에 나서 공무원 임용규정을 바꾸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고가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인 생물학적 의약품은 물론 간염치료제들의 보험급여 기간을 대폭 연장시키는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이러한 순기능과 함께 역기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다. 무엇보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 대한 우려가 크다.

환자단체들의 과도한 활동력이 오히려 진료에 대한 불신을 키울뿐 아니라 의사들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이다.

지난 2006년 발생한 여의도성모병원 임의비급여 사건은 환자단체로 촉발된 의사와 환자의 불신에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한국백혈병환우회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환급 결정을 놓고 병원 측이 환자들에게 부당한 진료비를 부과했다며 의사들의 비도덕성을 문제 삼았다.

의사들이 불필요한 진료로 환자들에게 바가지 진료비를 부과토록 했다는 주장이었다. 환우회는 소속 회원 60여 명과 함께 병원을 상대로 진료비 반환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의료진은 “물에 빠진 사람 구했더니 보따리 내 놓으란다”며 환자단체들의 주장에 불쾌감을 나타냈다.

급여기준 내에서 진료를 했더라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어 환자들의 동의 하에 추가 약제를 사용했는데, 뒤늦게 돈을 내놓으라는 얘기에 “뒤통수 맞은 기분”이라며 격분했다.

서울대병원의 한 교수는 “환자를 위한 진료를 돈벌이로 매도하는게 환자단체가 하는 일이냐”며 “의사와 함께 부당한 정책을 개선해 나가도 부족한 상황에서 환자와 의사의 불신만 조장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서울대병원의 다른 교수도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병원들이 너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게 작금의 보험기준”이라며 “이런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환자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환자권리를 위한 환자단체들의 활동은 아무리 독려해도 부족하겠지만 이런식은 곤란하다”며 “진정 환자를 위한 활동이 무엇인지를 천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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