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질환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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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염과 원자탄, 일본 군국주의

박지욱의 메디시네마(38) 간장선생

 2016.07.25

‘간장 선생’(1998년 개봉)은 간장을 잘 쓰는 유명한 셰프의 이야기가 아니라, 히로시마 근처의 항구도시에서 열성적으로 환자를 보살피는 의사 아카기의 별명입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독일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어촌의 주치의로 일하는 그는 15년 전부터 점점 늘어나는 간염 환자들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서는 간염이란 병의 존재 자체를 몰랐기 때문에 그의 진단은 번번히 무시를 당하고, 환자들은 간염을 입에 붙이고 다닌다며 그에게 ‘간장 선생’이라는 별명을 붙여줍니다. 돌파리라는 말이지요.

특별한 치료법이 없는 간염 환자를 보면, 아카기는 포도당 주사를 놓고 ‘ 쉬며 잘 먹어라’ 처방을 내리는데, 총력전을 펴는 1945년 여름의 일본에서는 어림없는 일입니다. 급기야 지역 군사령부의 군의관에게 불려가 배급물자인 포도당 주사를 아껴쓰고, 허무맹랑한 간염 진단을 하지 말라는 질책까지 받습니다.

하지만 아카기는 굴하지 않습니다. 간염은 이미 유럽에서는 인정받는 병으로 전쟁 중에는 더 만연하는데도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군부가 영 못마땅합니다. 그리고 간염에 장티푸스라는 엉터리 진단을 붙이는 꿍꿍이속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던 중, 군의관으로 만주에 있는 아들로부터 편지와 전보가 동시에 도착합니다. 편지는 아들이 복무하는 731부대에서 비밀리에 간염을 연구한다는 사실을, 전보는 아들의 전사를 알렸습니다. 상심한 아카기, 하지만 아들을 위해서라도 간염 연구를 꼭 하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집니다.

만주 하얼빈의 일본 관동군 731 부대.  ⓒ 위키백과

만주 하얼빈의 일본 관동군 731 부대. ⓒ 위키백과

감염병 연구에 꼭 필요한 현미경도 생겼고, 때맞추어 수용소를 탈출한 네덜란드 포로는 현미경의 해상도를 높이는 작업을 도와줍니다. 연구를 위해 필요한 신선한 간염 조직은 자신이 보살피던 환자의 몸에서 얻습니다. 드디어 간염의 병원체를 현미경으로 확인하려는 순간, 군인들이 들이닥칩니다.

아카기와 그 일당들(?)은 적국의 스파이를 숨겨주었다는 죄목으로 심한 고문을 당하고 풀려납니다. 석방 후에도 아카기는 연구를 다시 시작하며 진료도 뒷전으로 미룹니다. 그러다가 환자가 죽게 방치하는 일이 터지고, 심한 죄책감에 빠지고, 방황합니다. 결국 자신이 할 일은 연구보다는 진료라며 마음을 다잡고 다시 환자를 보러 나섭니다.

80년대 간염 방지를 위해 거국적으로 ‘회식 때 술잔 안 돌리기’ 운동

우리도 한때는 간염이 국민병이었습니다.  80년대에는 간염 확산 방지를 위해 거국적으로 ‘회식 때 술잔 안 돌리기’ 운동도 했습니다. 간염은 대부분 바이러스 감염으로 걸리는데 잠복기를 거쳐 간이 붓고(오른쪽 갈빗대 아래가 단단해지며 아픕니다), 황달(온몸이 노랗게 됩니다), 피로, 식욕부진, 발열 등의 증상이 생깁니다. 90%는 스스로 항체를 만들어 스스로 회복되지만, 10% 정도는 만성 간염으로 진행하고 나중에는 간경화를 거쳐 간암까지 생길 수 있는 무서운 병입니다.

여러 증상 중에 황달은 눈에 쉽게 보이므로 5,000년 전부터 기록되었습니다. 2,500년 전에는 2주만에 죽어버리는 ‘황달 돌림병(바이러스성 간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을 히포크라테스가 기록했습니다. 그는 ‘꿀물’이 치료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아카기가 환자들에게 포도당을 주사한 것도 같은 맥락이군요.

해마다 봄이 되면 콜레라, 장티푸스 에방접종이 있었다. 1970년대의 흔한 풍경이었다.  ⓒ 부산 임시수도 기념관

해마다 봄이 되면 콜레라, 장티푸스 에방접종이 있었다. 1970년대의 흔한 풍경이었다. ⓒ 부산 임시수도 기념관

근대기에는 서구에서 이런저런 전쟁 중에 ‘황달 돌림병’이 흔해집니다. 특히 제2차세계대전 동안에는 무려 1,000만 명의 군인들이 간염에 걸렸습니다. 불결한 위생 환경에 더하여, 주사바늘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6.25전쟁 중에 군인들이 콜레라 장티푸스 등의 전염병 예방주사를 많이 맞았습니다. 하지만 수십 명 당 하나의 주사기를 돌아가며 맞았던 탓에 간염이 많이 퍼져 이후로 수십 년 동안 국내 보건의 심각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간염에 대해 잘 몰랐으니 어쩔 수는 없었습니다. 1960년대 중반이 지나서야 간염은 사람 사이에서 옮는 병이고, 가볍게 앓는 A형과 혈액/성 접촉으로 옮으며 심각해질 수도 있는 B형 두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버룩 블룸버그.  ⓒ 위키백과

버룩 블룸버그. ⓒ 위키백과

의사이자 인류학자였던 블룸버그(Baruch Bloomberg; 1925~2011)는 같은 병이라도 민족에 따라 내성이 다르다는 점을 신기하게 여겨 혈액 속 항체의 차이가 그 원인이라고 가정합니다. 가능하면 많은 민족의 피를 얻기 위해 전세계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에게만 나오는 ‘오스트레일리아 항원(Au)’이란 것을 발견합니다. 블룸버그는 이것이 질병 저항성의 민족적 차이를 설명해줄 증거가 되리라 여겼겠지만, 어찌된 일인지 다른 저개발국가의 국민들의 피 속에도 있고, 심지어는 미국 내 혈우병 환자들에게서도 발견됩니다. 좀 당황스러웠겠지요? 이 사람들은 아무런 혈통학적 공통점이 없으니까요.

알고 보니 이 항원은 간염환자의 잠복기 동안 혈액에서 검출되는 ‘표면 항원(SH)’이었습니다. 이후로 표면항원, 호주항원은 모두 ‘B형 간염 바이러스 표면항원(HBsAg)’으로 통일해 불렀습니다. 이 항원은 오스트레일리아와는 무관하고, 간염바이러스가 몸 속으로 들어왔다는 징표였습니다. 지금도 간염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HBsAg’ 양성/음성을 확인하는 것이지요.

블룸버그의 발견 덕분에 비록 간염이 증상이 없는 건강한 사람의 피라고 해도 HBsAg 이 검출되면 수혈을 못하게 합니다. 때문에 혈액을 통한 간염 전파가 많이 줄기 시작합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1969년에는 HBsAg 를 이용해 최초의 간염 백신도 만듭니다. HBsAg 을 이용한 수혈 전 검사와 백신 제조는 전세계에 만연했던 간염 치료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줍니다. 덕분에 1976년 가을에 스톡홀름에서 걸려온 국제전화를 받는 행운을 얻었겠지요?

B형 간염 바이러스(HBV).  ⓒ 위키백과

B형 간염 바이러스(HBV). ⓒ 위키백과

1970년에는 데인(David Dane)이 처음으로 B형 간염을 옮기는 바이러스(HBV)를 분리해 간염의 병원체를 눈으로 처음 확인합니다. 만약 영화 속의 아카기가 1945년에 자신의 현미경으로 바이러스를 확인했다면 데인보다 무려 25년이나 앞선 발견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바이러스는 크기가 너무 작아 광학현미경이 아닌 10만배 이상의 전자현미경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아카기의 2,000배 광학현미경으로 바이러스를 보았다 해도 그냥 먼지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또한 바이러스는 세균 배양 배지에서는 자라지도 않고, 세균을 걸러내는 미세 여과지도 통과해버렸습니다(‘여과성 병원체’라고도 불렸습니다).

이른바 ‘미생물 사냥(Microbe Hunting)’ 시대인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많은 세균들이 발견되었지만 바이러스는 1960년이나 되어야 그 실체를 확인합니다. 라틴어로 ‘독(毒)’을 뜻하는 바이러스(virus) 중 제일 먼저 발견된 것은 담배모자이크바이러스(TMV)였고, 현재까지 대략 5,000종 정도를 발견했습니다.

전쟁 말기 일본인들을 괴롭혔던 간염, 식민지였던 우리나라는 사정이 더했겠지요. 잘 먹고 푹 쉬게된 1980년대였지만 우리 국민의 HBV 의 앙성률은 인구의 7.3%였습니다. 15명 당 1명의 비율입니다. 30년 지난 2005년에는 3.7%으로 거의 절반으로 떨어졌습니다. 갓난아기들의 접종률은 95%에 육박하고 양성률도 1% 미만이라 점점 드문 질병이 될 것입니다.

 1945년 여름, 일본 국민은 간염으로 신음하고, 국가는 군국주의 독이 퍼져

다시 영화로 되돌아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괴짜 의사의 고군분투기처럼 보이지만, 조금 달리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왜 간염이었을까요?

간은 우리 몸의 대표적인 해독(解毒)장기입니다. 간이 망가지면 빌리루빈이 온 몸을 노랗게 물들이고(황달), 암모니아는 머리로 가서 사람을 실성하게 만듭니다(암모니아성 뇌증). 몸에 건강한 간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사회에도 건강한 자정기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1945년 여름의 일본은 국민은 간염으로 신음하고, 국가와 사회는 자정기능을 잃고 곳곳에 군국주의라는 독이 퍼진 상태입니다.

아카기는 국민들은 물론이고 이 나라도 지독한 간염에 걸렸고, 치료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 나라를 지배하는 군대는 간염이란 애초부터 없는 것이고, 치료도 필요하지 않다고 아카기를 윽박지릅니다.

치료의 시기를 놓치면 병이 깊어지는 것처럼, 이 나라의 병도 점점 더 깊어져 독이 머리에 퍼진 말기 증상을 보입니다. 젊은이들을 카미카제로 내몬 것도 부족해 병들고 힘없는 노인들까지 본토 옥쇄 결전의 장으로 내몰려 합니다.

이제 자가 치유 능력을 상실한 말기 환자에게 필요한 외부의 힘을 빌어서라도 강력한 치료를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건강했던 다른 장기와 조직도 망가뜨린 병든 간은 이제 마지막 남은 목숨마저 내놓아라 합니다. 하는 수 없이 의학의 힘을 빌어 날카로운 메스로 암덩이를 잘라내거나, 강력한 방사선으로 암덩이를 태워야 합니다. 고통이 따르지만 그래야 목숨을 건집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난데없이 고래가 나타나고, 어부의 딸은 그 고래를 잡겠다고 바다에 뛰어들고, 그리고 눈부신 섬광과 거대한 구름(히로시마 원폭)이 등장합니다. 이런 비현실적인 엔딩을 ‘강력한 치료’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치유될 수 없던 군국주의 일본은 결국 외부의 힘, 그것도 ‘방사능’으로 치료될 수 밖에 없었다고 말입니다.

아카기의 눈에 보이는 구름은 흔한 버섯 구름이 아닙니다. 빨갛게 타오르는 간을 지닌 거인입니다. 거인의 간은 염증 때문에 아주 빨갛게 달아올랐습니다. 결국 그 간을 안고 거대한 연기가 되어 사라집니다. 아카기는 그렇게 군국주의의 마지막을 봅니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이 비현실적인 엔딩을 통해 그 이야기를 하고싶었던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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